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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1-03-06 23:48
'비트코인'으로 1억원어치 마약 판 그놈들…떡상에 '싱글벙글'
 글쓴이 : 소찬소
조회 :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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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김지현 기자, 정한결 기자, 오진영 기자, 홍순빈 기자, 김주현 기자, 김남이 기자] [[MT리포트] 비트코인, 지하에선 이미 중앙통화(上)]━'마약·성착취물 거래 '검은화폐'…비트코인 급등에 웃는 그놈'━'0.1BTC'2017년 2월 조모씨(36)가 대마초를 사기 위해 전송한 비트코인이다. 다크웹(특정 프로그램으로 접속 가능한 비밀 웹사이트)에서 판매자를 찾은 조씨는 판매자의 전자지갑에 비트코인을 전송하고, 판매자가 지정한 장소에서 대마를 찾아 피웠다. 일명 '드랍' 수법으로 비트코인 전송 후 대마를 찾기까지 3시간이 걸리지 않았다.첫 거래가 성사되자 이후는 편했다. 조씨는 나흘 후에도 비트코인으로 대마를 구매했다. 조씨는 2년간 202회에 걸쳐 비트코인으로 마약을 구매했다. 총 지급한 비트코인은 25.52BTC로 당시 시세로 총 1억원가량을 비트코인 구매에 썼다.조씨는 수사당국에 덜미를 붙잡혔고, 지난 2월 법원에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의 선고를 받았다. 하지만 조씨에게 마약을 판매한 판매자는 아직 오리무중이다. 조씨가 판매자에게 지급한 비트코인의 가치는 현재 13억9000만원에 달한다.사진 = 이지혜 디자인기자최근 비트코인이 역대 최고가를 갱신하자 범죄자들이 웃고 있다. 마약과 성착취물 거래, 피싱 등 다양한 범죄에 비트코인의 '공용화폐'로 쓰이는 가운데, 비트코인의 가치가 크게 올라서다. 가만히 앉아서 추가 이익을 거두고 있는 셈이다.◆다크웹·암호화폐 활용 마약 사범, 9.1배 증가…비트코인 시세따라 가격 조정3일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다크웹과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를 활용한 마약류 사범은 748명이 검거됐다. 2019년과 비교해 9.1배 급증한 수치다. 비트코인 등을 통한 마약 거래는 젊은 층에서 주로 활용되는데 지난해 20대 마약사범이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비트코인을 이용한 마약거래는 주로 다크웹을 통해 이뤄진다. 마약 구매자가 비트코인을 거래소에서 구매한 뒤 판매자의 전자지갑으로 비트코인을 전송하는 방식이다. 비트코인 전송을 확인한 판매자는 마약을 숨긴 장소를 판매자에게 알려주고, 구매자는 지정된 장소에서 찾아간다.비트코인은 2016년 비트코인 암호화폐로 주목을 받기 시작하면서부터 마약 거래에 활용됐다. 조씨는 적게는 0.01BTC에서 많게는 0.71BTC를 전송하며 대마를 구매했다. 비트코인의 시세에 따라 판매자가 요구하는 비트코인의 양은 달랐다.◆'웰컴투비디오' 손정우·'박사방' 조주빈, 비트코인 거래…보이스피싱 자금세탁 활용세계 최대 아동 성착취물 웹사이트 '웰컴투비디오' 운영자 손정우가 9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구속 전 피의자심문)를 마친 뒤 호송차로 이동하고 있다. 2020.11.9/ 사진 = 뉴스1비트코인은 차명거래가 가능하고 거래 흔적이 거의 남지 않는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마약뿐만 아니라 △성범죄 △피싱 △도박에도 활용된다. 또 불법 송금, 자금세탁, 탈세 등에도 활용되고 있다. 안정성이라는 장점이 범죄에도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다크웹'에서 아동·청소년 성착취물을 배포한 '웰컴투비디오' 운영자 손정우(25)도 비트코인으로 이용대금을 받았다. 손정우는 비트코인 시세가 오르면 이용대금을 조정해주며 이용자를 끌여들었고, 4억원가량의 범죄수익을 거뒀다.손정우는 비트코인을 받은 뒤 이를 다시 다수의 거래소로 옮겨 추적을 피하거나 암호화폐에 재투자하며 관리했다. 또 일부는 환전해 차량을 사거나 전세금과 생활비 등에 사용했다. 텔레그램에서 성착취물 영상을 제작·유포한 '박사' 조주빈도 암호화폐를 사용했다.보이스피싱 범죄에서도 비트코인은 자금세탁·송금의 용도로 활용된다. 보이스피싱으로 뜯어낸 현금으로 비트코인을 사고, 이를 보이스피싱 총책 등에게 보내는 방식이다. 자금 추적이 어렵고, 외국으로도 자금을 빼돌릴 수 있다.◆범죄활용 비트코인 거래량 총 11조…"비트코인 등 중앙 규제 필요"사진 = 이지혜 디자인기자블록체인 포렌식 업체인 사이퍼트레이스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다크웹의 암시장, 랜섬웨어 공격자, 해커, 사기꾼 등 범죄 관련 비트코인 계좌의 거래 총량은 35억달러(3조9343억원)를 기록했다.이는 비트코인 계좌 거래량만 추적한 것으로, 다른 암호화폐까지 포함하면 이 액수는 100억달러(11조2380억원)로 뛴다. 다른 포렌식업체 체이널리시스는 "아직 (범죄 연관성이) 밝혀지지 않은 거래도 있다"면서 "2020년 범죄 관련 암호화폐 거래량이 추후 상승할 것"이라고 예상했다.하지만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가 전혀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것은 아니다. 범죄자들의 거래 기술이 높아짐과 동시에 수사당국의 추적 기술도 쫓아가고 있다. 경찰은 암호화폐 거래를 추적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도입해 수사에 활용하고 있다.범죄 방지를 촘촘하게 하려면 각국 정부가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박춘식 서울여대 정보보호학과 교수는 "비트코인은 법정화폐가 아니라 거래 추적이 힘들다"면서 "다른 국가와 공조하고, 비트코인을 화폐로 인정하지 않더라도 중앙에서 규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정한결 기자, 오진영 기자, 김주현 기자━'박사' 조주빈도 쓴 비트코인, 범죄자들이 쓰는 이유━"(비트코인이) 정말 혁신적이고 새로운 사업 모델이라면 구식의 범법행위에 의지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프릿 바바라 전 미국 뉴욕남부지검 검사장)2014년 1월 미국에선 유망했던 비트코인 거래회사 '비트 인스턴트'의 창업자 찰리 쉬렘이 미 법무부에 체포됐다. 조사 결과 그는 온라인 마약거래업자와 협력해 범죄 행각을 벌였다. 둘은 2년간 비트 인스턴트를 이용해 대량의 비트코인을 사들이고, 한 온라인 약품 거래 사이트에서 마약을 익명으로 사려는 이용자들에게 판매했다.이는 암호화폐 업계와 미국 수사기관 등에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쉬렘은 당시 페이스북 최대 주주였던 윙클보스 형제에게 150만달러를 투자받는 등 비트코인 업계의 최대 기대주였다.◆해외에서도 '비트코인 범죄'에 몸살인터넷 메신저 텔레그램에서 미성년자를 포함한 최소 74명의 성 착취물을 제작·유포한 혐의를 받는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25)이 2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종로경찰서에서 서울중앙지방검찰청으로 이송되고 있다.2020.3.25/ 사진 = 뉴스1지난해 세간을 뒤집어놨던 텔레그램 '박사방'의 운영자 조주빈(25)이 수익을 챙기기 위해 사용한 수단은 비트코인이었다. 조주빈은 2018년 12월부터 지난해 3월까지 텔레그램 내에서 미성년자 성착취 영상을 판매하는 대가로 대화방 참여자에게 20만~150만원 상당의 비트코인 등을 받았다.특히 조주빈은 경찰 추적이 어렵다며 이용자들에게 모네로를 사용하라고 권하기도 했다. 조주빈은 지난달 비트코인 등으로 거둬들인 1억800만원의 범죄 수익을 은닉한 혐의로 징역 5년을 추가 선고(총 45년) 받았다.비트코인을 범죄에 활용하는 것은 조주빈뿐만이 아니다. 이미 한국에서 비트코인은 '마약 거래 공용화폐'로 쓰인다. 비트코인을 범죄에 악용하는 것은 이제 전세계적인 현상이 됐다. 단순 피싱 범죄자들도 이젠 비트코인을 요구하는 경우가 잦다.2017년 세계 150개국 30만대 이상의 컴퓨터를 망가뜨린 '워너크라이' 랜섬웨이 사건 때도 비트코인이 사용됐다. 워너크라이는 컴퓨터의 취약점을 파고들어 중요 파일을 암호화해 사용할 수 없게 만들었다. 해커는 파일을 복원해주는 조건으로 비트코인을 요구했다.뿐만 아니라 2015년 7월부터 2년 8개월 동안 비트코인을 받고 운영된 세계 최대 아동 성착취물 사이트 '웰컴투비디오' 사건, 2018년 2월 인도네시아에선 비트코인으로 네덜란드에서 마약 '엑스터시'의 원료를 구매한 범죄조직 일당이 현지 경찰에게 붙잡히는 등 세계 곳곳에서 크고 작은 범죄들이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다.◆익명성·수사기관 추적 어려워…범죄자들이 선호랜섬웨어 '워너크라이'에 감염된 컴퓨터 화면 /사진 = 뉴스12009년 처음 나왔을 때만해도 비트코인이 범행에 쓰일 것이라고 예상하는 이는 적었다. 하지만 2015년 비트코인 생태계가 커지면서 범죄 영역까지 활용성이 커졌다. 특히 비트코인은 다크웹(특정 프로그램으로 접속 가능한 비밀 웹사이트)과 결합하면서 파괴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비트코인 등과 같은 암호화폐가 범죄에 사용되는 가장 큰 이유로는 익명성이 꼽힌다. 은행계좌와 같은 역할을 하는 비트코인 전자지갑 주소는 무작위로 생성된 20~60자리 숫자와 알파벳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은행계좌와는 달리 사람 이름이 붙지 않는다.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소유자를 알아내기 힘들다는 뜻이다.추적이 어렵다는 점도 있다. 비트코인의 경우 한 번 계좌를 만들면 입출금을 할 때마다 새로운 계좌형 전자지갑 주소가 생성되기 때문에 일반금융계좌보다 비교적 거래 내역를 쫓기 어렵다.2019년엔 '믹싱 앤 텀블러(믹싱)'라는 기술도 등장했다. 믹싱은 비트코인을 전송할 때 송금할 지갑으로 바로 보내지 않고, 여러 개의 지갑으로 쪼갰다가 합쳐 보내는 방식이다. 수사기관 입장에선 추적이 훨씬 복잡하게 되는 셈이다.해외 비트코인 거래소의 협조 여부도 문제다. 국내 거래소의 경우 수사기관에 협조적인 태도를 취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해외거래소는 연락이 안 되는 경우도 많다. 협조 요청을 할 수 있는 방법도 제각기 다른 탓에 수사 과정에 어려움이 발생한다.◆송신자·수신자조차 서로 모르는 다크코인…거래 규모조차 파악 힘들어/사진 = 임종철 디자인기자최근 범죄자들 사이 떠오르고 있는 '다크코인'도 골칫거리다. 비트코인 등을 비롯한 대부분의 암호화폐에는 익명성이 부여돼 있지만 추적이 아주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모든 거래 내역이 공개되는 블록체인의 특성상 지갑 소유자의 거래 패턴을 분석하거나 환전 기록을 찾아 신원을 특정해 내는 방법이 있기 때문이다.하지만 다크코인들은 이런 추적 경로까지 원천 차단한다. 대표적인 다크코인으로 꼽히는 '모네로'의 경우 거래 시 여러 사용자의 주소를 뒤섞어 송신자를 알 수 없게 만들고(링 서명 기법), 수신자도 자신의 계좌가 아닌 생성된 일회용 주소와 접근 키(스텔스 주소 기법)를 활용해 모네로를 송금받는다.송신자와 수신자조차 서로가 누구인지 특정 불가능하다. 대시, 지캐시 등 다른 다크코인들도 비슷한 원리로 운영된다.박춘식 서울여대 정보보호학과 교수는 "국제적인 조직범죄자들의 경우 해외 거래소를 이용해 여기저기 자산을 이동시키는 경우가 많은데, 해외 국가마다 상황이 제각각"이라며 "여기에 수천 번의 자금 쪼개기가 이뤄지는 경우 비트코인을 완벽하게 추적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워진다"고 지적했다.정두원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역시 "수사기관이 범죄사실을 발견했다하더라도 가상계좌 등을 통해 거래를 하면 추적에 혼선이 발생한다"며 "모네로 같은 다크코인의 경우 워낙 음지에서 거래가 발생해 실제로 얼마나 개인 간의 거래가 형성됐는지 규모조차 정확히 파악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했다.김지현 기자, 홍순빈 기자, 김남이 기자김지현 기자 flow@mt.co.kr, 정한결 기자 hanj@mt.co.kr, 오진영 기자 jahiyoun23@mt.co.kr, 홍순빈 기자 binihong@mt.co.kr, 김주현 기자 naro@mt.co.kr, 김남이 기자 kimnami@mt.co.kr▶부동산 투자는 [부릿지]▶조 변호사의 가정상담소▶줄리아 투자노트<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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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림을 팔지 않기로 했다. 팔리지가 않으니까 안 팔기로 했을지도 모르나 어쨌든 안 팔기로 작정했다." 이 화가는 파리 유학을 앞두고 있었다. 그림을 팔아 유학 경비에 보태려 했지만,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그림은 좀처럼 팔리지 않았다. 화가는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반세기 후 자신의 그림이 한국 미술품 중 가장 잘 팔리는 작품이 되리라고는. 화가 이름은 김환기다.국내 미술품 중 최고가 작품은 김환기 화백의 '우주'(1971)다. 이 그림은 2019년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 132억원에 낙찰됐다. 종전 최고가는 85억원에 팔린 '붉은색 전면 점화'(1972)였다. 이 그림도 김환기 작품이다. 국내 미술품 가격 상위 10점 중 9점이 김환기 그림이다. 사실상 김환기와 김환기의 싸움이다. 무엇이 그를 한국 미술 황제로 만들었을까.132억원에 낙찰되며 국내 미술품 최고가를 기록한 작품 `우주`(1971). <환기재단> ◆ 섬마을에서 태어난 소년 김환기는 한국에서 태어나 일본과 파리를 거쳐 뉴욕에서 눈을 감은 화가다. 파란만장했던 그의 삶은 쪽빛 바다 곁에서 시작했다. 김환기는 1913년 전라남도 신안군 안좌도라는 섬에서 태어났다. 대지주였던 아버지 덕분에 유복한 환경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소년은 바위에 걸터앉았다. 눈앞에 바다가 펼쳐졌다. 살가운 미풍과 따스한 햇볕을 맞으며 푸른 바다를 그렸다. 김환기는 일찍 그림에 소질을 보였고, 화가라는 꿈을 꿨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시절이었다. 한국에서 제대로 미술을 배울 길은 없었다. 이중섭, 천경자, 나혜석, 이쾌대처럼 이 시기에 붓을 잡은 예술가 대부분은 일본 유학길에 올랐다. 김환기도 19세에 일본으로 갔다. 1933년 니혼대 미술부에 입학했다. 당시 일본에는 유럽 미술이 썰물처럼 들이닥쳤다. 유럽의 초현실주의, 입체주의 화풍에 영감을 받은 젊은 화가들은 새로운 회화를 꿈꾸며 심기일전했다. 김환기도 그중 하나였다. 그는 일본에서 추상화를 그리는 화가들과 어울렸다. 금세 두각을 드러냈다. 권위 있는 미술전에서 '종달새 노래할 때'(1935)라는 그림으로 입선했다. '종달새 노래할 때'는 소녀가 물동이를 머리에 이고 있는 장면을 그린 작품이다. 소녀 등 뒤에는 푸른 바다가 슬며시 보이고 하늘엔 구름이 있다. 김환기가 도전했던 미술전은 실험적인 작품이 겨루는 무대였다. 그는 고민 끝에 고향을 선택했다. 자신이 태어나 자란 섬마을이야말로 상상력을 발휘해 그리기 좋은 주제였다. 김환기는 고향 풍경과 그곳에 두고 온 여동생을 향한 그리움을 꾹꾹 눌러 담아 이 그림을 그렸다. 이렇게 김환기의 예술 여정이 시작됐다. 일본 유학시절에 그린 `종달새 노래할 때`(1935). 이 그림으로 일본 미술전에서 수상했다. <환기재단> ◆ 시인 이상과 화가 김환기의 여자 일제강점기라는 암울한 현실조차 예술가 영혼을 꺼트리진 못했다. 1930년대 서울 뒷골목에는 마치 파리 몽마르트르처럼 가난한 예술가가 몰려들었다. 그들은 다방이나 술집에서 머리를 맞대고 싸구려 술을 마시며 시, 소설, 그림을 주제로 토론했다. 이 중심에 있었던 인물이 천재 시인 이상이다. 그러나 천재는 단명했다. 1937년 이상은 겨우 27년을 살고 폐결핵으로 눈을 감았다. 그에게는 결혼한 지 석 달밖에 안 된 아내 변동림이 있었다. 변동림은 당시 이화여대를 졸업한 엘리트였고, 작가로 활동했다. 이상이 사망한 해에 김환기는 일본에서 고국으로 돌아왔다. 일본에서 인정받고 온 그는 금세 주목받았다. 1941년 개인전까지 열며 서서히 날개를 폈다. 김환기는 일본 유학을 떠나기 전에 결혼했었다. 아버지 강요로 잘 알지도 못하는 여성과 맺은 혼인이었다. 1942년 김환기 부친이 세상을 떠났다. 그는 유산을 미련 없이 소작농에게 나눠줬다. 그리고 사랑 없이 결혼한 아내에게 위자료를 주고 이혼했다.김환기는 한 시인을 통해 변동림을 소개받는다. 한쪽은 이혼, 한쪽은 사별이라는 아픔을 공유한 둘은 그렇게 만났다. 1944년 김환기와 변동림은 결혼했다. 변동림은 남편 성을 따라 김향안이라는 이름으로 개명했다. 만약 김향안이 없었다면, 오늘날 우리는 김환기라는 이름을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다. 김향안은 김환기 그림이 만개하도록 도운 일등 공신이다. 한국전쟁 시기에 그린 `판잣촌`(1951). 전쟁에 지친 고단한 삶을 따뜻한 색채로 담아냈다. <환기재단> ◆ 교수직을 버리고 파리로 갔다1945년 대한민국은 해방을 맞이했다. 1년 후 김환기는 서울대 미술대 교수가 됐다. 신사실파라는 미술 단체를 만들어 예술운동을 주도했다. 신사실파가 추구했던 그림을 딱 잘라 설명하긴 어렵지만, 주로 서양 추상화에 영향을 받은 화가들이 김환기 주변에 모였다. 그중엔 이중섭도 있었다. 일본 유학 시절만 해도 김환기는 마치 몬드리안처럼 기하학적인 추상화를 자주 그렸다. 고국에 돌아오고 난 후에 그의 그림에는 한국적인 요소가 전면에 등장했다. 특히 백자의 은은한 미학에 푹 빠졌다. 돈이 생길 때마다 백자 항아리를 사 모았다. 그는 백자를 소재로 많은 그림을 남겼다. 세잔이 사과를 관찰하고 또 관찰하며 위대한 그림을 창조했듯이, 김환기도 오랜 시간 백자를 어루만지며 자신만의 조형 언어를 구축했다. 백자 외에도 이 예술가에게 영향을 준 건 그리움이었다. 고향을 떠난 자들의 숙명답게 김환기도 평생 향수에 시달렸다. 그는 유년 시절 눈앞에 펼쳐졌던 쪽빛 바다를 그리워했다. 모든 풍경이 느릿느릿 흘러갔던 어린 시절 평온함을 떠올리며 서글펐다. 그의 그림에는 고향 바다 푸른색이 자주 등장한다. 미술계에선 이 색을 '환기 블루'라고 부른다. 1950년 6·25전쟁이 터졌다. 김환기는 종군 화가로 활동했다. 전쟁이 길어지자 김환기는 부산으로 피란을 왔다. 예술가들은 전쟁에도 굴하지 않았다. 오히려 비극을 초월하기 위해 더 열정적으로 그림을 그렸다. 전쟁 중 부산에서 열린 미술 전시회는 100건이 넘는다. 김환기도 붓을 놓지 않았다. 동료 화가 집 다락방에서 지내던 그는 피란 수도 부산에서도 전시회를 열 만큼 끈질기게 그림을 그렸다. 이 시기에 그린 '판잣집'(1951)은 전쟁이라는 비극을 기록한 작품이다. 전쟁통에 판자촌에서 살아가는 고단한 사람들을 그린 작품이지만, 색채는 따뜻한 봄날처럼 맑다. 화가의 온화한 시선이 느껴진다. 최악의 순간에도 김환기는 언젠간 찾아올 봄을 상상하며 이 그림을 그렸을 것이다.1952년 김환기는 서울대에서 홍익대 교수로 자리를 옮겼다. 1년 후 전쟁은 끝났다. 아내 김향안이 김환기 마음에 불을 지폈다. "파리에 가보는 게 어때요?" 김환기가 일본 유학 시절에 접한 미술은 모두 파리에서 건너온 것들이었다. 아내의 설득으로 그는 현대미술 수도 파리로 건너갈 계획을 세운다. 1955년 김향안이 먼저 파리로 떠났다. 그는 남편을 위해 파리에서 미술 평론을 배우고, 미학을 공부했다. 화상들과도 친분을 쌓았다. 그렇게 터를 닦아 놨다. 1956년 김환기는 교수직을 포기하고 아내가 있는 파리로 향했다.파리 유학시절에 그린 `매화와 항아리`(1957). <환기재단> ◆ 점점 '점'으로 향했다 김환기는 파리에서 3년간 체류했다. 그는 루브르박물관조차 가지 않았다. 위대한 작품에 압도돼 자신의 색을 잃어버릴까 걱정했기 때문이다. 몸은 파리에 있었지만, 그의 그림엔 한국적인 정서가 더 짙어졌다. 여전히 백자와 매화를 그렸다. 파리에서 김환기는 개인전을 몇 차례 열었다. '환기 블루'로 불리는 신비로운 푸른색이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그만큼 고향을 그리워했다는 의미다. 모든 재산을 이 유학 비용에 쏟아부었기에 부부는 생활고에 시달리기도 했다. 1959년 김환기는 고국으로 돌아왔다. 홍익대로 돌아가 학장을 맡았다. 1963년 그는 한국 대표로 브라질 상파울루비엔날레에 참가했다. 돌아오는 길에 뉴욕에 들렀다. 한두 달 정도만 머물 예정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대로 뉴욕에 정착했다. 이때 김환기 나이는 쉰 살이었다. 대학교 교수직을 버리고 새로운 무언가를 도전하기 쉬운 나이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김환기는 모험을 택했다. 당시 뉴욕은 파리를 제치고 현대미술 메카로 떠오르던 중이었다. 이 역전의 주역이 액션페인팅으로 유명한 잭슨 폴록이다. 김환기가 뉴욕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폴록이 사망한 지 몇 해 지난 후였다. 하지만 폴록이 일궈놓은 추상표현주의 미술이 절정을 이뤘다. 김환기도 이 장르에서 영향을 받았다. 뉴욕에 오고 난 후부터 김환기 그림 스타일은 확연히 변했다. 그동안 김환기는 백자와 꽃처럼 구체적인 대상을 소재 삼아 그림을 그렸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완전한 추상화로 나아갔다. 점, 선, 면, 색처럼 기본적인 조형 언어를 재료로 모험을 시작했다. 김환기는 자신의 작품 세계를 해체하고 또 해체했다. 그는 점점 '점'으로 향했다. 김환기는 거대한 캔버스 위에 점을 찍기 시작했다. 뉴욕 시절에 그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1970). <환기재단> ◆ 그리움이 사무친 그림유독 눈동자에 그리움이라는 감정이 가득한 사람들이 있다. 김환기가 그랬다. 그는 해외여행도 자유롭지 않던 시절에 오직 예술을 위해 일본, 파리, 뉴욕에 갔다. 그곳에서 그는 이방인이었고, 자주 그리움 속에 파묻혔다. 1970년에 그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는 김환기 추상화 대표작이다. 지나간 시간에 관한 애틋함이 아득히 스며든 작품이다. 이 그림 제목은 '저녁에'라는 제목의 시 마지막 구절에서 따왔다. 이 시를 쓴 김광섭은 김환기와 오래 교류한 시인이었다. 뉴욕에 있는 동안 김환기는 김광섭과 편지를 자주 주고받았다. 김광섭은 자신의 시 '저녁에'를 써서 뉴욕에 붙였다. 시 전문은 이렇다. "저렇게 많은 별 중에서 / 별 하나가 나를 나려다 본다 /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 밤이 깊을수록 /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 나는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 이렇게 정다운 / 너 하나 나 하나는 / 어디서 무엇이 되어 / 다시 만나랴" 시를 읽은 화가 마음엔 슬픔의 파도가 일렁거렸다. 고향이었던 안좌도가 그리웠고,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추억했다. 선술집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예술을 이야기하던 친구들을 떠올렸고, 그 친구 중 비참하게 세상을 떠난 이중섭을 추억했다. 이 모든 지나간 시간을 생각하며 그리움이라는 파도에 파묻혔다. 김환기는 붓을 들고 고향 바다의 푸른색 점을 찍었다. 점 하나를 찍을 때마다 이제 다시는 만나지 못할 다정한 얼굴과 추억을 떠올렸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는 서글픔, 그리움, 애틋함이 흐르는 작품이다. 결과적으로 보면 뉴욕에서 김환기 그림은 꽃을 피웠다. 하지만 김환기는 생전에 이 과실을 누리지 못했다. 그의 그림은 팔리지 않았다. 미국 생활 내내 부부는 생활고에 시달렸다.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고급 교육을 받고 명문대 교수까지 맡았던 김환기는 팔자에 없던 육체노동까지 했다. 미국 생활 초기 그는 넥타이공장에서 일할 정도로 형편이 좋지 않았다. 병원비를 아끼려 몸이 아파도 참기 일쑤였다. 그럼에도 "낮에는 햇빛이 아까워 붓을 안 들 수가 없고, 밤에는 전깃불이 아까워 그림을 안 그릴 수가 없다"고 말하며 그리움을 눌러 담아 점을 찍었다. 1974년 그는 뇌출혈로 쓰러졌다. 고향을 생각하던 그는 예순을 갓 넘긴 나이에 타국에서 여정을 마쳤다.추상화 앞에서 관객이 주로 느끼는 감정은 혼란이다. 구체적인 피사체가 없는 추상화는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그런데 많은 관객은 김환기 추상화 앞에서만큼은 어떤 설명을 듣지 않고도 스르르 무장해제된다. 서글픈 푸른색 점들은 관객을 저마다의 추억열차에 태운다. 누군가는 이 푸른 점을 통해 지금 내 나이보다 어렸던 부모의 얼굴 보고,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나버린 사람을 생각한다. 점을 찍었던 화가가 그랬던 것처럼. 김환기는 세상을 떠나기 한 달 전 일기장에 이렇게 썼다. "새벽부터 비가 왔나 보다. 죽을 날도 가까워 왔는데 무슨 생각을 해야 되나. 꿈은 무한하고 세월은 모자라고." 사람들은 자신만의 우주를 품고 산다. 세월은 흐르고, 인간이라는 우주에는 그리움이 별처럼 쌓여간다. [조성준 기자]▶ '경제 1위' 매일경제, 네이버에서 구독하세요▶ 이 제품은 '이렇게 만들죠' 영상으로 만나요▶ 부동산의 모든것 '매부리TV'가 펼칩니다[ⓒ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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